평소 글루미한 소설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줄리언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장편소설은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해피엔딩’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교훈을 애초에 믿지 않는데다 나쁜 인간들이 더 잘사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을 신랄하게 까발리는 이 소설은 꽤 충격이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현역에서 은퇴한 60대 토니 웹스터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세 명의 친구들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에이드리언은 조금은 고차원적이고 음습하고 염세적인 사고를 하는 애늙은이 같은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토니는 대학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베로니카의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보낼 만큼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졌지만 결국 그녀와 헤어지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의 절친인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고 토니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축복하는 편지를 쓰게 된다. 그 후로 몇 달 후 토니에게 친구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을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은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후 베로니카의 편지 한통으로 20대 시절! 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그 결말은 굉장히 놀랍다. 실은 자신이 보낸 편지가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고 한 가정을 몰락시키고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이기적이고 편협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로니카와 토니가 60대가 되어 재회했을 때, 그녀가 남긴 말이 이 모든 것을 함축시켜 준다.
인간의 찌질함과 허영심, 질투심, 무책임함을 표현 해주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신이 내린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라는 명언이 있다. 머릿속에 지식, 정보를 담고 비워내고, 비워낸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소비과정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한 말들 혹은 글들이 누군가를 파국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 간과하며 살아간다. 작은 농담이 가십이 되고 가십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무분별 하게 확산되는 현대사회에서 어디 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바램일까?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한 거야’라는 변명으로 남의 불행을 무의식적으로 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작가 중 한명인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으로 색다른 소설을 읽고 싶다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참고로 두 책 모두 영화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