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본 을릉도는 해안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처진 하나의 거대한 산이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울릉도에 내리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산과 바다 그리고 그 중간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있는 것과 달리 산세가 워낙 강해 해안가조차 온통 산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울릉도 하면 성인봉(984m)이다.
울릉도의 대부분의 산은 성인봉 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일주도로 옆의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어김없이 성인봉에 다다른다. 성인봉이 울릉도의 대장산이자 모산(母山)인 이유이다.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나오면 길은 두 갈래로 이어진다. 도동파출소 울릉읍사무소를 지나 KT울릉지점에서 30m쯤 더 올라가면 또 갈림길. 오른쪽 커브길 입구에 '성인봉 가는 길'이라 적힌 팻말이 향하는 곳으로 직진한다.
등산로를 따라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져 가며, 속으로 평소 운동을 게을리 하는 모습이 떠올라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성인봉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림이 아직 남아있다. 물론 육지에도 마지막 원시림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상대적 찬사일 뿐 성인봉과 비교하면 한 수 아래 이다.
성인봉은 자주 안개가 끼어 바로 앞도 잘 보이질 않는 날이 많다고 들었지만 막상 안개속을 헤쳐나가니 느낌이 아주 묘했다.
내가 어렵거나 머리가 아픈 일이 생겼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잠겼을 때 어느 듯 햇님이 나와 안개를 쫓아 버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