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나는 취업 대란이라는 풍파에 표류하는 작은 돛단배였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어쩌면 해외의 내 나이 또래들과도 벌이게 되는 ‘취업 전쟁’은 지독했다. 수십 여 곳의 다양한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였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같은 말로 시작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이틀 전의 탈락은 소주 한잔으로 잊었고, 어제의 불합격은 강바람을 맞으며 떠나보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상처는 받지 않게 되었지만 동시에 취업에 대한 나의 열정도 함께 사그라졌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 나 홀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곧장 일본 최북단의 홋카이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오사카나 도쿄가 아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홋카이도로 간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영화에서 본 그곳은, 더렵혀지지 않는 눈으로 가득한 설국 이였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새로이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다. 지친 내게 위로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함께 주는 여행이 될 것이라 믿었다.
홋카이도에 내려 가장 먼저 날 반긴 건, 내 옷깃을 추켜세우는 눈보라였다. 하지만 그 눈보라는 취업 전쟁의 패잔병인 내게, 위로 대신 살을 에는 듯 채찍질을 내렸다. 무엇인가 잘못 됐다. 영화 속 포근한 홋카이도는 없었고, 생각을 조용히 정리할 만한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따뜻할 만큼 포근해 보였던 설국의 함박눈은 재앙으로 다가왔고, 고즈넉해 보였던 풍경은 사실 지독한 고독 이였다. 관광객이 적은 홋카이도에서 기본적인 일본어도 모르는 나는 이방인이자 외톨이였다.
돌아가고 싶었다. 날 좌절하게 만들고 포기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한국이지만, 돌아가고 싶었다. 취업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엔 사실 가족과의 따뜻한 식사가 있고 날 응원해주는 친구들의 소주잔이 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다니는 줄 알았던 내가 사실 행복했다는 것을 나는 홋카이도의 단칸방에서 깨달았다.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인지 모른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은 그곳은, 누군가가 꿈에 그리며 가고 싶어 한 직장이다. 더 이상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 오랜 연인은, 사실 누구보다 나를 위해 많은 눈물을 흘려 줄 사람이다.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하지만, 오늘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
크기가 다른 고민과 걱정을 우리는 모두 가슴 한 켠에 움켜쥐고 있다. 비록 크게 나아지지 않는 내일이 올지라도, 어쩌면... 우리는 오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