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를 통해 영화를 하나 추천 받았다. 대학을 다닐 땐 매주 도보 10분 거리에 있던 영화관을 찾던 나였지만 최근에는 한달에 한 번 조차 영화관을 잘 찾지 않게 되었다. 학창시절보다 영화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 탓도 있었지만 구미를 당기는 영화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재미삼아 보던 영화에 점차 이것저것 들이대는 기준과 조건이 많아지면서 점차 볼 수 있는 영화가 줄어들던 중, 친구의 SNS에 ‘오션스8’을 극찬하는 글이 올라왔다. 시리즈 전작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피가 난무하는 등의 잔인한 장면이 없으며, 쟁쟁한 출연진이 등장하는 점까지 이 영화는 부담 없이 즐길 만한 오락 영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한 진짜 이유는 ‘여자가 봐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영화’라는 점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희대의 전과자 ‘대니 오션’을 오빠로 둔 ‘데비 존스(산드라 블록)’는 가석방과 동시에 친구인 ‘루(케이트 블란쳇)’를 찾아가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는 범죄계획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계획에 맞게 각 범죄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꾸리고 그들은 멋지게 작전을 수행해낸다. 얼핏 다른 케이퍼 무비(Caper Movie : 무언가를 강탈하거나 절도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영화 장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범죄 팀원이 모두 여자이며, 극 중 남성의 역할은 조연에 지나지 않고, 그 마저도 비중이 낮다는 점에 있다. 대표적인 국내 케이퍼 무비 ‘도둑들’의 성비가 거의 반반이었고, 남녀 등장인물의 로맨스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스토리의 한 축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여성들은 남성의 도움이 필요치 않으며, 오히려 숱한 남성 조연들을 속이거나 목적에 맞게 이용한다. 그리고 팀 내의 누구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들은 작전의 성공에 있어 누구 하나 무임승차 하지 않고 정해진 본인의 몫을 받고자 할 뿐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의미 없이 시기질투하거나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록 범죄이긴 하지만 완벽한 팀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빈틈없고 완벽한 비즈니스의 모범사례를 제시한다. 쓸데없이 서로를 헐뜯지 않고 본인의 맡은 바 임무에만 집중한 결과 목적 이상의 성과를 달성해냈으며 모두가 각자의 행복을 일궈낸 엔딩은 영화관을 나서는 발걸음마저 상쾌하게 한다.
2018년 대한민국의 가장 핫한 키워드는 단연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인터넷을 달구는 이슈의 반은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월 13일 있었던 제7회 지방선거에선 최초의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선언한 후보가 1.7%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에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많아졌는지, 페미니즘이 언제부터 이렇게 대한민국의 뉴스와 신문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는지조차 제대로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듯 언제부턴가 그들만의 학문이자 운동이었던 페미니즘이 사회 전반의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그와 동시에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문제를 제기하는 ‘프로불편러’ 역시 늘어났다.
프로불편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불편한 것이 너무 많다. 소주 광고 모델은 하나같이 짧고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있으며, 모 광고 카피에서 여자는 혼자선 전구 교체도, 컴퓨터 교체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피해자들이 SNS에 용기를 내 고백하며 이슈가 된 미투 운동은 이러다 나도 미투 가해자가 되는게 아니냐는 웃을 수 없는 농담의 소재가 되고 만다. 하나 둘 불편함의 사례를 열거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불편한게 많아서 괜찮은지’, ‘안 불편한 게 있긴 한지’ 도리어 걱정을 사고 만다. 최근에는 나 역시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불편해서 답이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션스8’는 끝없는 불편함의 세계에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불편함의 요소를 모두 배제한 이 영화도 충분히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를 갖출 수 있고 나아가 새로운 교훈을 제시할 수 있다. ‘오션스8’의 흥행을 기원하며 우리 사회 역시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